잔잔한 파도가 친다. 오후5시가 넘어서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고 그 공간을 파도소리가 심드렁하게 채운다. 여기파도 소리나 미국의 파도소리나 한국의 파도소리나 다 같은 소리일진데 참 다르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마음편히 휴가 중이니 좀더 느리게 그리고 좀더 더 느리게 일렁여 지친 심신을 어루만지는 것 같다. 이 잔파도에 닳고 닳은 조약돌들이 이 파도에 부딪혀 그리고 또 서로 부딪혀 이 느린 파도소리에 화음을 쌓는다.
바다 쪽으로 돌출된 해변이라 양쪽으로 파도가 친다. 한쪽은 잔잔하지만 그 반대쪽은 제법 성난 파도가 들이치고 있었다. 덕분에 이 해변으로 나온 코는 수세기에 걸쳐 한쪽으로 쏠리고 있다고 한다. 두 시간 전만 하더라고 사람이 가득 차있었는데 정말 썰물처럼 사람이 빠져나가 고즈넉하다.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니어서 그런 걸지도. 유명한 해수욕장이라 하면 늦은 밤까지 불야성을 이루며 항상 활기찬 모습을 상상해 왔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니 괜히 상념에 잠긴다. 아무래도 집나온지 2주째가 되가니 슬슬 돌아갈 걱정도 되고 더 나아가 졸업도 신경쓰이고 뭐 그런 느낌? 그래도 걱정이 슬픔을 일으키지는 않고 다행히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 고민하고 또 해야할 일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기울어진 이 해변코처럼 뭔가 방향이 정해지겠지.
해가 지고 바다 색깔도 더 진해진 느낌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 아름다운 바다 색깔 말하는 것도 입이, 아니 손가락이 아프다.
사진을 찍을 때 노출 시간을 좀 늘렸더니 거친 파도도 해변을 덮고 있는 구름처럼 뿌옇게 나왔다. 거친 파도도 조금만 견뎌내면 구름처럼 부드럽게 날 감싸안아주는 담요처럼 편안해 질 거라는 듯.
그렇게 해가 넘어가고 Brac에서의 밤이 지나간다. 밤에는 바람이 세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