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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일요일의 산텔모 시장에서 호텔로 돌아와 잠시 더위를 식혔다. 아르헨티나는 아래 위로 긴 나라라서 이번 여행 동안 날씨 변화를 너무 심하게 느껴 조금 조심히 돌아다니려고 노력했었다. 사실 전날만해도 빙하 구경하고 눈 밟고 다녔었는데 구름 한 점 없는 여름 날씨의 더위가 쉽게 익숙해 질 리가 없었다. 나름 도심 중앙에 숙소를 잡아 걷는 거리를 최대한 줄이려고 했지만 10분만 걸어도 땀이 나는 날씨에서 30분 이상 걷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오전에 당했던 소스테러 때문에 아무래도 좀 많이 예민해져 주변을 경계하면서 걷다보니 더 힘들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벨리스크를 지나가는데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스케이드 보드를 타다가 내가 들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위협적으로 다가와 깜짝 놀라기도 했다. 주변에 다른 관광객들도 많았고 심지어 이를 지켜보는 경찰도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아쉬운게 이번 여행동안 정말 좋은 기억도 좋은 구경도 많이 했는데 친구들이 물어보면 아무래도 가장 임팩트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게 되다 보니 소스 테러라든지 가방 잃어버린 일 등 이런 안 좋은 일들은 먼저 이야기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정말 멋진 곳인데. 여러분 조심하면 크게 문제 없어요.
여튼 나름 유명하다는 피자인 Pizzeria Guerin에 들러 점심을 먹고 오늘 가장 기대했던 Teatro Colon으로 향했다. (피자는 뉴욕 피자와 뉴헤이븐 피자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입장에서는 그닥 특별한게 없었다.) Teatro Colon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극장을 꼽으면 항상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남미최고의 극장이라고 하는데 마침 우리가 방문한 이날 2015년 마지막 공연인 호두까기 인형 발레가 있어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그 유명한 발레 공연을 포기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스페인어를 구글 번역기의 도움으로 읽어내어 결국 예매에 성공하여 들어갈 수 있었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왠걸 표를 사려는 사람 표를 들고 있는 사람이 한데 뒤엉켜서 박스 오피스부터 혼잡했고 이미 카페테리아는 우아하게 와인 한 잔을 하려는 분들로 북적북적했다. 인파를 지나쳐 입장을 하려고 줄을 서니 거대한 스크린과 의자들이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라 밖에서도 볼 수 있게 해줄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 같았다. 마치 빛을 반사시켜 동네 사람들 모두 다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시네마 천국의 극장처럼. 그 후에 결국 안 좋은 일이 벌어지지만. 이런 연말 공연을 기다리는데 너무 더워 벽 쪽 그늘에 바짝 붙어 따가운 햇빛을 피하고 극장 벽에서 세어 나오는 한기를 맞으며 입장을 기다렸다.
과연 극장은 정말 멋졌다. 우리는 5층이어서 내려다 보면 어마어마한 극장의 규모가 아찔하게 느껴졌다. 뉴욕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또는 연극을 공연하던 극장에만 익숙했고 이런 오페라 극장은 처음이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괜히 떨어질까바 조심조심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며 공연전까지 사진을 찍었다. 사실 오전에 극장 투어도 있었지만 왠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극장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굳이 직접 공연을 보기로 선택했었는데 솔직히 공연 자체는 아쉬움이 많았다. 인생 최고의 공연이었다는 칭찬일색의 리뷰들과는 달리 내가 본 공연은 왠지 예전의 영광 속에서 현재의 어려움을 보지 못하는 아르헨티나의 거울과 같다고나 할까? 뭔가 군무에서 합이 맞지 않는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을 보며 조마조마하다가 결국 한 발레리나가 넘어졌을 때는 나도 모르케 어이쿠라고 해버리고 말았다. 관객들 역시 왕왕 플래시가 터졌고 위에서 보다보니 핸드폰 불빛이 여기저기 보였다. 그리고 장난감 말이 나오는 장면에서 어디선가 까발료 (스페인어로 말) 라고 외치는 아이의 목소리까지. 공연이 마치고 한 해의 마무리를 축하하며 날리는 꽃가루와 기립박수하는 관객들 그리고 얼굴에 미소를 가득담고 인사하는 공연자들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더불어 나는 내실을 잘 다지고 있는가 혼자 만족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항상 반성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