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한 일요일 아침 산책에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조금 더 걸어보기로 했다. 여름이 한창인 이 곳은 겨울의 연말연시에 익숙한 우리에게 신선했고 왠지 더 설레었던 것 같다. 아직까지는 걷기에 무덥지 않기도 했고. Plaza de Mayo에서 벗어나 서쪽으로 Av. 9 de Julio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무그늘이 거리에 드리워져있었고 아침 장사를 시작하시려는 분들이 부지런하게 가게 앞을 물청소하고 계셔서 시원한 느낌이 보도블럭의 열기 대신 발바닥에 전해졌다. 유럽의 이민자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이고 또한 자신들은 유럽인들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아르헨티나인들이 건설한 수도 한 가운데를 걸어서 그런지 길거리의 느낌은 유럽의 그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마주친 Cafe Tortoni. 150년 전통의 카페로 부에노스 아이레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명사들이 찾아와 시간을 보내곤 했다는 유서 깊은 곳이라고 한다. 저녁에는 탱고 쇼도 펼쳐진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그 유명세 때문에 너무 북적거리고 조금 비싸다는 등의 좋지 않은 리뷰들이 있어 굳이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찾게 되니 반가웠다. 카페 앞에 노래를 하고 계신 입상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넓은 거리라는 Av. 9 de Julio에 다다랐다. 역시나 유럽의 느낌이 가득한데 100m 조금 넘는 넓은 거리 탓에 몇 번 쉬어 건너가게 된다. 저 멀리 에비타의 모습이 멋지다. 그리고 돌아보면 이 거리의 주인 그리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상징 오벨리스크가 우뚝 솟아있다. 이 곳은 아르헨티나의 독립기념일 7월 9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라고하며 넓은 거리에는 대중교통 환승센터도 있고 교통의 중심 역할을 한다. 그러고 보니 처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한 날 밤에도 이 거리를 지나갔었다. 특히 이 넓은 거리를 채운 차와 그 차들 사이로 레이싱을 하듯 거칠게 달리던 택시가 문득 생각이 났다. 아 택시 계기판에 이름 모르게 깜박거리던 경고등도.
7월 9일 대로를 건너 국회의사당까지 더 걸어갔다. 시간은 정오를 향해가고 우리도 조금 더 걸어갈 수록 단테의 신곡에 영감을 받아 지어졌다는 아름다운 Palacio Barolo와 대비되는 낡고 정갈하지 못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모습도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한 때는 10대 경제대국에 해당될 정도로 잘 나가는 국가였지만 어느새 남미에서도 예전의 지위를 조금씩 상실해가는 모습이 일요일 오전 멋진 국회의사당 앞에서 힘없이 배회하는 노숙자의 모습과 철거와 수리를 준비하는 듯한 모습의 건물들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간단히 휴식을 취하고 다음 일정을 위해 문을 나서다 우리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악명 높은 소스테러를 당했다. 여행자에게 슬쩍 다가와 냄새나는 소스를 뿌리고 다른 일행이 괜찮냐며 다가와 귀중품을 절도하는 방식인데 우리에게 소스를 뿌린 사람들은 뭔가 어설프기도 했고 우리가 사전에 잘 알고 있어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를 잘 해서 사진기나 지갑 등을 도난 당하는 불상사는 다행히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침에 좋았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첫인상은 어느새 많이 사라졌고 말도 안통하는 낯선 곳을 여행한다는 스트레스가 대낮의 불볕더위와 함께 우리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