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열하는 12월 남미의 태양이 조금씩 넘어갈 5시 무렵 하던 일을 정리하고 호텔을 나섰다. 리콜레타 묘지를 지나니 푸르른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최초 시장의 이름을 딴 Plaza Intendente Torcuato de Alvear와 프랑스가 기증한 독립 기념물이 있는 Plaza Francia를 지나는 데 여행을 하는 느낌 보다는 그냥 일하다가 잠깐 산책을 나온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내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이 나와 같은 여행자들이 아니라 직장에서 보람된 또는 힘들었을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는 사람들 또는 그 사람들의 가족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였던 것 같다. 유명한 관광지인 리콜레타 묘지가 문을 닫은 6시에는 이방인들이 이 곳을 떠나고 대신 낮 기간동안 직장으로 잠시 떠나있던 사람들이 돌아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한 무리의 사람들과 뒤엉켜 넓은 Av. del Libertado를 건너 신전 같은 건물에 박물관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무슨 학교 강당인 걸 깨닫고 얼른 나왔다. 사실 이 지역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좀 알아준다는 박물관들이 있는데 스페인어를 잘 모르다보니까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리가 관심이 있던 MALBA(Museo de Arte Latinoamericano de Buenos Aires)는 하필이면 우리가 간 화요일 마다 휴무여서 결국 구경하지 못했고 나중에 알고보니 잘 못 들어갔던, 사진에서도 보이는 건물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 법과 대학이었다.
대신 Plaza de las Naciones Unidas에 있는 거대한 알루미늄 꽃 Floralis Generica를 구경할 수 있었다. 이 곳에 오기전 안내책자에서 봤을 때는 '굳이 이 걸 보러 가야되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직접 보니 제법 멋있었다. 나름 과학적으로 설계되어서 해가 뜨면 꽃봉오리가 벌어지고 해가 지면 닫힌다고. 하지만 한 동안 고장이 나서 꽃봉오리가 벌어진 채로 있었고 이걸 고칠 책임이 있었던 아르헨티나 록히드 마틴사가 하필 국영화되어 차일피일 수리가 미뤄졌다가 최근에야 다시 작동하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