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는 빙하트레킹을 했다. 빙하트레킹은 짧은 미니트레킹 (1시간 정도)와 Big ice라는 긴 트레킹 (3시간 정도)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1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해서 짧은 것을 선택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얼음 위를 걷는게 뭐가 재미있을까 별로 궁금하지 않아서 굳이 하지 않았는데 여기저기 다녀보니 이 것도 새로운 경험인 것 같아 이번에는 과감히 신청했다. 보통 하루 3회 출발하는데 이날은 크리스마스라 2회 밖에 없었고 우리가 마지막 트레킹 일정이었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 잠시 휴게소 같은데 모여있었더니 가이드가 나타나 3조로 나누어서 한 조씩 출발시켰다. 당연히 바로 빙하 위로 걸어올라는 건 아니고 등산화 체인을 하나씩 나누어주고 일일이 채워주었다. 평지에서 걸을 때 체인의 무게가 제법 느껴졌는데 빙하 위에 올라갔더니 그렇게 무거운지 모르겠더라. 그렇제 준비를 마치고 고개를 들어보니 이전에 출발했던 조들이 하나씩 내려오려고 준비를 하는 게 보였다. 나중에 안 것이었지만 마지막에는 빙하 얼음을 바로 깨서 위스키에 띄워서 한 잔씩 주더라. 어찌보면 빙하를 가지고 투어 프로그램을 짤 때마다 꼭 나오는 위스키 시음회라 그리 신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억겁의 시간 동안 지구가 눌러서 만든 얼음은 냉장고에서 얼려나온 얼음과 뭔가 다른게 있지 않았을까?
빙하의 모습은 기기묘묘했고 차갑게 날카로웠다. 하지만 걸으면 걸을 수록 차가운 도시남자의 따뜻한 내면을 느끼듯 의외의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한걸음한걸음 나갈때마다 앞서 많은이들이 밟은 탓인지 딱딱한 얼음의 느낌보다는 폭신한 눈을 밟는듯했고 상처따위는 없을 것 같은 강인함 사이사이 갈라진 틈 그리고 그 틈 사이에 차있는 많은 물들이 청량감을 주었다. 흐린 날씨 탓인지 얼음의 희뿌연 색과 하늘빛이 큰 차이가 없어서 마치 흰 도화지에 흰 크레파스로 처음엔 거칠게 그리고 점점 꼼꼼하게 채워나간 애들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이렇게 Perito Moreno 투어를 마치고 El chalten으로 넘어갔는데 왠걸 날씨가 하루 종일 비가와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Patagonia의 상징과도 같은 험준한 봉우리들은 구경하지 못하였다. 지금이야 무척 아쉽지만 역설적이게도 당시에는 아직도 Torres del Paine에서의 여독이 풀리지 않아서인지 이 기회에 잠이나 실컷 자두자고 해서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잠으로 보냈고 그렇게 파타고니아 여행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 여행은 아직 절반이 더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