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새 봄이 성큼 와서 또 저만치 성큼 가벼렸다. 갑자기 따뜻하진 날씨에 여기저기 바스러지는 흙둔덕이나 질척질척 물러지는 진창처럼 게을러지는 하루하루를 조금이나마 벗어나 새로운 긴장감을 일상에 주기 위해 한동안 하지 않았던 브로드웨이 로터리를 다시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작년에 처음으로 보기 시작한 브로드웨이 공연이 열손가락이 훌쩍 넘었고 이렇게 그냥 보고 잊어버리는게 아까워서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 기록을 남기기 위해 정말 오래간만에 블로그에 로그인을 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랫동안 글을 안썼네.
+ 일단 가장 처음에 본 공연부터. On your feet! Gloria Estefan과 Emilio Estefan의 성공과 좌절 그리고 재기까지의 이야기를 뮤지컬 형식으로 풀어낸 공연인데 역시나 Lottery에 당첨되어 Orchestra (1층) 한 사람당 40불로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https://lottery.broadwaydirect.com/show/on-your-feet/). 사실 지난 2월 달 부터 지원했었는데 지원하는 족족 당첨이 되어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혹은 정말 인기가 없는게 아닌가 의심을 했던 작품이다. 아내는 한 4번 지원했는데 3번 정도 당첨되었고 나도 한 4번 지원했는데 2번 당첨되었나? 문제는 당첨 결과가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7시 공연의 경우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에 나오고 당첨이 되면 1시간내에 티켓을 살 건지 말 건지 결정을 해야하다보니 혹시나 다른 더 인기가 있는 혹은 더 싼 작품들이 나중에 당첨되면 어떻하지 하는 마음에 그냥 포기하기가 일쑤였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큰 마음 먹고 로터리가 당첨되자 마자 결재해서 뉴욕으로 향했다.
+ 화요일 저녁 공연이라서 그런지 관객석이 한 80% 정도 밖에 차지 않았고 그 나마도 우리처럼 로터리 표가 많은 듯해서 내심 작품이 별로인 갑다 생각하며 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그리고 시작되는 화려한 조명과 흥겨운 라틴팝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올해 봤던 작품 중에 가장 신났고 가장 가슴에 와닿는 (그리고 가장 알아듣기 쉬운 영어...) 그래서 몇 번 포기해버린 로터리가 미안해 질 정도로 훌륭한 경험이었다. 실존하는 가수의 일생을 주제로 그 가수의 노래를 가지고 만든 뮤지컬의 경우 Jersey boys 처럼 이야기가 단지 가수의 일생에 제한되고 또 노래가 줄거리에 어거지로 끼워맞춰진다는 느낌이 날 수 있는데 On your feet!은 아주 잘 녹아들었다. 노래들이야 당연히 완전 신났고.
+ 쿠바 이민자로서 스페인어로 된 노래만 부르다가 영어로 된 노래를 발표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Emilio와 그 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 이민자 후손들에 대한 차별은 왠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마침 이민자가 미국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인지라 관객석에서도 뜨거운 호응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고유의 라틴 댄스로 전 세계의 호응을 얻어내 주류 팝 시장에 충격을 주는 이야기에서는 짜릿한 쾌감마저 느껴졌다. 예전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참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K-pop이 그럴지도 모르고.
+ 이런 거시적인 이야기 뿐만 아니라 성공의 뒷 그늘에 옅어져가는 가족애와 Gloria Estefan의 교통사고로 인한 좌절,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모습에서 어떻게 보면 상투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유려한 노래로 멋지게 풀어내었다. 특히 Gloria가 수술에 들어갈때 그 어머니와 Emilio간의 화합하는 모습, American music award에서 재기하는 Gloria Estefan의 모습을 재현한 장면에서는 많은 관객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마침 그 당시 American music award의 실제 모습이 Youtube에 있어서 여기에 소개한다. 공연에서 이 무대와 의상을 그대로 재현한다.
+ 역시 참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가수는 자기 노래 제목 따라가는 것 같다. 결국 Gloria는 그 큰 사고에도 불구하고 Get on your feet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