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성 결혼이 미국에서 합법화가 되었다. 다들 각자의 생각이 있겠고 하고 싶은 말이 있겠지만 문득 여행기에 밀려버린 뮤지컬 감상문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두 달간 거의 매일 Broadway musical online lottery에 지원했고 이 삽질 덕택에 복권에 3번이나(!) 당첨이 되어 아주 싼 가격에 관람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뮤지컬들이 올해 한 창 뜨거웠던 작품들이라 올해 Tony award에 후보로 많이 올랐고 덕분에 내 평생 거의 처음으로 뭔가 응원하는 심정으로 시상식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응원했던 작품이 바로 Fun Home이었다. (물론 내 응원 덕분은 아니었겠지만 이 작품은 올해의 주인공이 되었다. Best Musical, Best Book of Musical, Best Original Score, Best Direction of Musical, Best Leading Actor in Musical 수상)
+ 그 동안 봤던 뮤지컬들은 대부분 유머러스한 내용이었는데 Fun Home은 제목과는 전혀 다르게 조금 무거운 내용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복권 당첨된 나머지 기쁜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갔다가 조금 당황할 정도. 형식도 독특하여 한 면만 열린 전형적인 무대 구조가 아니라 사방이 열린 구조의 독특한 무대 형식이 극 시작도 전에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크다는, 현재 Wicked를 공연하는 Gershin theater 옆에 규모가 작은 Circle in the Square theater에 관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둘러앉아서 관람하는 모습이 좀더 배우들과 가까이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더군다나 우리는 복권 당첨자 전용자리였던 덕분에 맨 앞줄에서 볼 수 있었다.) 내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연기를 하는 배우들과 눈을 마주치니 신기하기도 하고. 한 번은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연기하는 통에 급하게 다리를 접어줘야 했다.
+ 이 작품은 실제로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레즈비언 만화가 Alison Bechdel의 자전적인 성장기로 세 명의 배우가 어린 Alison, 젊은 Alison, 현재의 Alison을 연기한다. 펜실베니아의 시골마을에서 자라나면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달아가는 모습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온 아버지 Bruce Bechdel과의 관계를 2시간 동안 (인터미션 없이) 그린다. 세 명의 Alison이 시간 순서와 상관없이 뒤죽박죽으로 등장하지만 체계적으로 잘 짜여진 구성 탓에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점점 여성적인 것 보다는 남성적인 것에 관심을 보이며 여성에게도 호감을 느끼는 모습을 저 어린 배우가 참 당차게 연기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버지의 외도에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항상 집을 가꾸고 평범하게 보이기 위해 일생을 희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특히 가슴 절절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내심 여우조연상을 두 배우 중에 한 명이 타기를 바랬었는데...쩝)
+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딸이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고민만하는 모습에서 과연 우리는 얼마나 가정에서 소통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였다.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이번 신호등에서 아니 다음 신호등에서 말 걸어봐야지 주저하다가 결국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굳이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그냥 일상 생활의 고민을 서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가슴에 담아두기만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만약 아버지와 딸이 서로 좀 더 이야기하고 서로를 이해했으면 극단적인 선택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서로 다르지만 서로 같다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한 사람의 끝에서 다른 사람의 시작이 만나는게 아니라 서로의 인생이 단단한 매듭이 되어 좀 더 행복해지지 않았을까? 이번 동성 결혼 합법화 결정이 이러한 고민들을 허심탄회하게 서로 나누고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짧게 덧붙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