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덮는 순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소개한 방법을 이용하여 얼른 글을 써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나는 너무 고민 없이 글을 쓰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일주일이 지나니 어느 새 열정은 식었고,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느껴졌던 감흥은 옅어져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 속에 세겨진 교훈,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더불어 지난 몇년간 독서에 게을렀던 모습을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 대학교 때나 군대에 있을 때는 참 뭔가 읽는다는 것이 즐거웠었는데. 매주 발행되던 씨네21을 매주 화요일마다 지하철 가판대에서 사들고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틈틈히 읽고 학교에서 나오는 대학 신문도 빠짐없이 읽곤 했었다. 군대에서는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집에 보내 부탁드리거나, 공용 외출 나갈 때마다 틈틈히 서점에 들르곤 했다. 그 때 모았던 움베르트 에코나 문학과 지성사의 소설집들은 제대 후에도 간간히 읽곤 했다. 그 때 읽은 글들이 모두다 좋은 글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또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능력도 안되지만, 글쓴이가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는 대로 따라가는 그런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때 쌓아두었던 얕은 지식들을 10년이 지난 지금도 간혹 꺼내 지적인 허세를 부리는 건 덤.
+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이런 긴 호흡의 활자의 자리를 인터넷 기사가 그리고 스마트폰에 뜨는 기사가 꿰차고 들어왔다. 글의 호흡은 짧아졌고 구조는 증발한 짧은 글을 어느 새 휘리릭 훓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예전에는 김은식의 <야구의 추억> 같은 좋은 글도 많이 있었는데 요즘은 내가 게을러 져서 그런 건지 좋은 글 찾기가 예전만큼 쉽지 않은 것 같다. 분명 허핑턴 포스트라든지 인사이트라든지 글을 소개하는 곳은 많아졌는데, 도대체 무슨 말은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글이라든지, 도대체 내가 왜 이런 걸 알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글들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의 사진을 걸고 썼는지 염려되는 글들 역시) 많아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독서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고 더욱 더 짧고 쉬운 글들만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 이런 환경일 수록 독자가 좀 더 현명해져야하고 좀 더 부지런해져야 하는데 무의식적으로 따라간 (그리고 가끔은 파닥파닥 낚이는)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이 책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과연 너는 무엇을 했느냐라는 질문을 아프게 던졌다. 두 대통령은 항상 독서를 하고 보고서를 읽고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토론을 했는데 과연 너는 무었을 했느냐라는 질문을 아프게 던졌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분명 좋은 재료들을 미리미리 준비를 해 두고 미리미리 정리를 해두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과연 너는 무었을 했느냐라는 질문을 아프게 던졌다.
+ 요즘 기차에서 보내는 두 시간 동안 다시 무언가를 읽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직 과학자다 보니 연구 논문들이 대부분이지만 좋은 습관을 되찾아 오는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논문을 읽는 것에도 내가 대단히 게을렀다는 사실에 흠칫 놀랐다.) 가끔 소설도 보고 조금 긴 호흡의 잡지도 하나 정기구독도 신청했다. 몇달 후에 똑같은 질문을 나에게 했을 때 조금은 덜 아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