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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기록"에 대한 단상 + 광고

# 이것 저것 쓰고 싶은 것도 써야할 것도 많은 요즘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뭔가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 중요함 역시 잘 알고 있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이 기록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게 제대로 알려준 분은 곰곰히 생각해 보니 (어처구니 없게도, 나중에 깨달은 것이긴 한데) 노무현 대통령이었던 것 같다.  한창 NLL 기록물 때문에 세상 시끄러울 때 문득 군대 시절이 떠올랐다. 자대 배치 받고 한 3개월 후에 행정병으로 재배치 되었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초짜 행정병에게 떨어진 첫 임무는 바로 "기록물 이관"이었다. 군대도 하나의 조직이라 하루에도 아니 한 시간동안에도 수많은 명령들이 쏟아지고 이를 기록물로 남기게 되는데 그 동안 이 과정에서 생성된 기록물들을 앞으로 후임자를 위해서 제대로 관리해보자는 것이었다. 근데 문제는 그 동안 이 기록물이라는게 관리가 제대로 되어오지 않았다는 점이었고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기록물을 관리해 본 사람 역시 사단내에 없었다는 점이요 더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걸 관리해야한다는 인식 자체가 (당연히 나도 마찬가지로)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 후 군생활 2년 남짓한 시간동안 "기록물 이관"은 일종의 화두와 같은 것이었다. 잊을 만하면 그 진행상황을 묻는 공문이 내려왔고 아무것도 모르는 간부들은 (이건 그들이 무식해서가 아니었다. 정말할 줄 아는 사람 또는 해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만 쳐다봤다. 간혹 상급 부대에서 교육한 답시고 내려온 사람들도 안타깝게도 모르긴 마찬가지여서 뭔가 속시원하게 설명해 주지 못했다. 그래서 그 당시 택했던 방법은 과거 문서 중 규정에 따라 파기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파기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생성되는 기록물들은 최대한 잘 분류한다였고 결국 1년 쯤 지나서는 제법 많은 기록물들을 정리해서 보관할 수 있었다. 이 모든게 바로 2003년 봄 바로 노무현 대통령 취임때부터 일어난 일이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 왜 그 동안 아무도 신경쓰지도 않았던 "기록물"때문에 내가 알지도 못하는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었는지. 하지만 지금은 "그게 다 노무현때문이다."였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 때 했던 기록물 이관이 잘 이루어졌다면 내가 누릴 수 있었던 소소한 행정적인 편리, 예를들면 일병 때 집행되었던 사업비가 병장 때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고 미리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도가 아니라 더 좋은 미래를 위한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이 조선 왕조가 500년이라는 기나긴 역사의 버팀목이 되었던 것 처럼.  

# 돌이켜 보면 대학교 때 부터 여행을 좋아했고 남 부럽지 않게 다녔었다.  하지만 좋은 추억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파편화되어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어린시절 장난감처럼 잊혀지고 나중에 찾으려고 하면 겸연쩍게 뒷통수만 긁적이게 되었다.  친구와의 어설펐던 첫 유럽 배낭여행, 그 때 찍었던 몇 만장의 사진들은 지금은 어디있는지도 모르겠고 그 때의 느낌들, 좋은 느낌이든 나쁜 느낌이든 분명 뭔가 느꼈었는데 분명히 되살리지 못해서 아쉬울 때가 많다. 그래서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한 페루 여행부터 여행기를 이 곳에 남기기 시작했다. 물론 남들에게 공개되는 블로그니깐 남들이 읽어봐주면 그리고 방문자가 2자리 간혹 3자리가 되면 당연히 기분이 좋다. 신경쓰이기도 하고. (말 나온 김에 이 자리를 빌어 여행기에 늘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 특히 서현이 부모님, 충북대 한 교수님, 페북 친구된 이후 반갑다고 인사도 못했던 중학교 친구 요한이,  곧 이탈리아로 여행가실 선배님과 곧 뵐 선배님, 취사장에 배깔고 누워 제대하면 블로그 만들어 연락하자던 고참님 모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 여행기의 또 다른 주인공인 아내에게도 특별히 감사의 말을). 하지만 역시 내 여행에 대한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 어느 날 불꺼진 실험실에서 현미경이 데워지길 기다리면서 페루와 아이슬란드의 여행기를 단숨에 읽어내려갔을 때의 흐뭇한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역시 본업에 충실하다 보면 꾸준히 여행기를 올리는게  쉽지 않다. 뜬금없이 날라오는 "기록문 이관"에 관한 공문같은 건 없지만 간혹 의무감에 블로그에 로그인을 하여 조금은 두서없는 글을 쓰기도 했다. 기본적인 맞춤법이 틀리는 것은 뭐 애교로 봐줄 수도 있겠지. 그러다 보니 내가 여행에 대한 추억에 글로 정리되기 전에, 그래서 기록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기 전에,  다른 형태의 기록을 먼저 남겨 놓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을 해서 사진만을 모아놓은 블로그를 하나 더 열었다.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쉽게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곳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그 여기에 그 블로그를 따로 "기록"해 둔다. 뭐 이미 여러번 페이스북에 링크를 보내 두었지만.

http://bbackjinphoto.tumbl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