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30이 넘어가면서 이렇게 일주일 정도 여행을 할 때는 꼭 하루씩 일정이 느슨한 날을 넣는다. 혈기 왕성한 20대에는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먹는 시간도 아껴가면서 조금이라도 눈에 (아니면 사진에) 담기 위해 발버둥쳤었다. 그러다 보니 여행 초반에는 불타는 열정으로 돌아다니다가 여행말미에는 여독이 쌓여 그 열정이 쉬 식어버린 적이 많았고 그 때 찍어놓거나 적어둔 것들도 결국에는 다시 돌아보지 않고 모르는 사이에 증발해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렇게 여행 중간에 한 번 정도 쉼표를 넣어주면 그렇지 않아도 (슬프게도) 20대 때에 비해 조금 떨어진 체력을 보충할 수도 있고 그 동안의 여행을 간단하게 정리하면서 남은 여행은 어떻게 즐기고 또 남겨야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다. 이번 여행에서는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계획된 등산도 없고 특별히 꼭 봐야할 것은 없는 그런 하루. 대신에 상대적으로 사람이 많이 방문하지 않는 (그래서 야생동물이 많은) Lamar valley까지 드라이브를 하기로 하였다. 그러다 운 좋게 곰 같은 야생동물만나면 좋은거고.
Mammoth hot spring을 지나 Grand loop road를 따라 동쪽으로 나아가니 비가 오락가락했다. 며칠동안 날씨에 신경이 곤두서있었는데 이 날 만큼은 그냥 비가 오는구나 아 이제 그쳤구나 별생각없이 다닐 수 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비오면 비오는데로 사람이 없는 Yellowstone의 북쪽이 살짝 안개에 덮히면서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고 운전하는 동안 정말 진정 야생에 있구나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2시간 남짓 운전했을까 Tower junction에 못미치는 지점에 있는 Floating island lake에 차들이 여러대 주차가 되어 있었고 사진기들이 호숫가에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호수가에 곰이 있다고. 그래서 슬쩍 다가가 잠시 좋은 망원경을 가지신 분에게 부탁해서 살펴보니 곰이 엘크를 사냥하여 곁에 두고 있는 것 아닌가. 멀리서는 그냥 바위인 줄 알았는데 망원경으로 보니 이미 곰이 식사를 여러끼 해서 엘크가 붉은 살과 뼈가 드러나 있었다. 곰은 한 번 사냥을 하면 이렇게 사냥한 것을 며칠 동안 보관하면서 배고플 때마다 와서 먹는다고 하는데 잠시 눈을 주변으로 돌려보니 역시나 피냄새를 맡은 까마귀들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적나라한 야생의 순간을 담으려고 사람들은 역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곰이 목이 말랐는지 호수로 뛰어들어간 순간 까마귀들은 몰려들었고 내 주변에서는 셔터 소리들이 순간적으로 가득했다.
나도 가지고 있는 망원경과 사진기로 어떻게든 찍어보려고 했는데 할 수 있는 말은 검은게 곰이요 분홍빛이 사냥당한 엘크라는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