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일상과 비일상의 연속이다. 하루하루 별 볼일없이 늘상하는 일하며 살아가다가도 일주일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주말에 아니면 아예 큰 맘먹고 제법 긴시간 동안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떠나기 힘들면 잠시 숨을 고르며 비현실적인 순간을 상상하기도 한다.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약한이들을 위험 속에서 구출하기도하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여기서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것은 아마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서 얼마나 균형을 잘 잡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일상이 길어지면 왠지 모르게 무기력해지고 일상탈출을 꿈꾸는 자신을 쉽게 발견하지만 비일상의 달콤함에 너무 오래 젖어있게 되면 다시 익숙함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 처럼. 한편으로는 곧 누리게 될 비일상을 기대하면서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기도 하고 반대로 비일상 속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박사 과정 3년차. 돌이켜 보면 그럭저럭 대학원 생활에 적응도 되어가고 있었고 실험 데이터들도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 일상에 너무 익숙해지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난하게 써 내려가던, 그래서 누구나 다 예상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내 일기 중 아직 쓰여지지 않은 곳에 "그런데"라고 시작하는 단락을 만들어 놓았다. 여느 대학원 생들처럼 평범하게 연구하고 공부하던 2010년 봄. 아이슬란드에서 터진 화산 때문에 유럽 항공망이 마비가 되었던 그 때, 바로 그 아이슬란드로 가는 비행기 표를 샀다. 이 아이슬란드 비행기 표는 일종의 상징이었다. 곧 다가올 비일상. 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하루하루는 즐거웠고 신났으며 보람있었다. 일상이었지만 일상같지 않았던 6개월이었고 내 인생에서 그렇게 또 효율적인 때가 돌이켜 보면 있었나 싶다.
그렇게 다다른 아이슬란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비일상의 끝이었다. 처음부터 비행기는 연착하더니 짐은 더 늦어져 3일 후에나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어는 분명 알파벳인데 읽을 수 없었고 (다행히 영어가 잘 통하긴 했다.) 여행하는 2주동안 한국인은 커녕 아시아인도 못 본 것 같다. 아니 몇 일동안은 본 사람 자체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 였다. 사진으로도 보기 힘든 아이슬란드 풍경은 무슨 외계 행성에 온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와서 누군가 평생했던 여행 중에 어디가 가장 좋았어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아이슬란드라고 말할 것이다.
박사 과정을 마무리하는 요즘, 정말 일상에 파묻혀,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마치 늪에 빠진 것 처럼 더 깊은 일상에 끌려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영화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에서 잠시 덮어 두었던 아이슬란드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영화에서는 Greenland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West Iceland의 일부인 성당이 마치 우주선 같았고 정말 아내에게 먹어보라고 말 조차도 않했을 정도로 해물수프가 맛있었던 Stykkishmour. Walter가 스케이드보드를 타고 내려왔던, 우리는 잃어버렸떤 짐을 마침내 찾고 드디어 첫 캠핑을 한다는 기쁨과 함께 신나게 내려왔던 Seyðisfjörður. 그리고 마치 히말라야인 것 마냥 세르파 둘을 대동하고 돌아다녔지만,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넓은 빙하를 자랑하는 Vatnajökull 등. 영화 내내 아내와 우리 저기서 밥 먹었는데, 우리 저기서 캠핑했었는데 그 때 기억을 되살리면서 봤다.
그리고 이 깊은 밤 그 아이슬란드의 비일상이 내일의 일상에 새로운 흥분을 줄 것 같은 기대감에 잠 못 이루고 글을 남긴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일상이지만 그리고 당장은 그 때 처럼 과감히 "그런데"를 쓸만한 용기도 없지만 그 때의 추억이 평범한 그리고 평범할 일상에 기분 좋은 파장을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심심하게만 보였던 Walter의 일상이 사실은 큰 의미가 있는 것 처럼 지금의 지난한 일상이 그 아이슬란드에서의 여행이 그랬던 것 처럼 그 언젠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 올 것이라는 기대 역시 갖게 해 주었다. 블로그 한참 뒤에 밀려나있던 아이슬란드 여행기를 다시 꺼내 읽고 사진첩을 다시 열어보고 잊었던 아이슬란드 어 자판을 다시 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