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렌타인 데이 기념으로 본 영화인데 데이트 무비로는 조금 무리인 듯. 말쑥한 사람들이 툭툭 뱉는 영국식 영어가 귀에 쏙쏙들어오는 깔끔한 액션영화를 기대하고 갔는데 후덜덜하게 잔인했다. 잔인한 영화를 잘 못보는 편이기도 한데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이 정갈해서 인지 잔인한 장면이 어처구니 없이 거북스럽게 느껴졌다. 킬빌 같은 영화가 '나 원래 잔인한 영화야 다 알고 왔으면서 왜그래?'라고 시작부터 관객에게 말을 건다면 이 영화는 제임스 본드 같은 신사같은 스파이가 그냥 사지를 절단해서 관객에서 던져버린 뒤 혼자 옷매무새를 정돈하는 느낌? 오히려 피가 안 튀어서 더 자극적이었다.
+ 어벤저스 영화에서 세계를 구하는 영웅으로 나왔던 닉 퓨리(Samuel Jackson)님이 난 사실 악당이 좋다면서 괴상한 발음과 미국 힙합 패션으로 자신을 두르고 고상한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며 항상 말끔한 수트를 입은 킹스맨들과 대결하니 이보다 더 단순할 수 없었다. 괜히 머리 아프게 반전 넣고 그런거 없이 돌직구를 날려주는게 한편으로 속이 시원했다. 마찬가지로 부성애라든지 동료애를 잘 넣을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딴 거에 관심없다는 듯 스트레이트로 달려나가니 상영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에 액션 장면에 Go Pro 같은 1인칭 카메라를 많이 사용해서 그런지 훨씬 현실감이 있게 힘을 주었다고 해야하나? 눈 뒤에서 날아오는 주먹이나 무기들은 시각적으로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이에 대처하는 주인공의 순발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면서 리듬감을 북돋아 주었고 눈 앞에서 뻗어나가는 주인공의 주먹이나 무기는 마치 게임을 하는 것 같은 타격감을 살려주었다.
+ 언제부터인가 뭔가 보고 나면 감동이 있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를 즐겨보았는데 정말 아무생각없이 보기에 좋은 영화였다. 속이 시원한 느낌을 안고 극장을 나왔더니 너무 추웠다. 여름에 봤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