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설록에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용머리 해안으로 급하게 향했다. 해가 지기전에 송악산까지 구경하려고 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해는 넘어가고 있었고 마음은 초조해졌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바람이 너무 세서 용머리 해안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대신 생긴 시간에 산방산에 올라가 볼 수 있었다. 왠지 밥그릇을 뒤집어 놓은 모양이 뇌리에 강하게 박혀서 인지 언젠가 한 번 올라가봐야지 마음 먹고 있었는데 이렇게 올라가보게 되는구나. 저 산위에는 조그마한 굴을 뚫어 놓고 부처님을 모신 산방굴사가 있는데 (여느 다른 굴사들이 그렇듯) 그렇게 인상깊은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용머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용머리 해안 저 하멜 상선 기념관의 배가 조금 뜬금없긴 한데 가을로 넘어가는 제주도의 갈대가 하늘거리면서 잊지 못할 풍경을 선사해 주었다. 올라가는 길이 특히 절을 지나 돌계단이 시작되면 짧지만 가파른 길이 우리를 맞아줘 가쁜 숨을 내쉬게 하지만 잠시 허리를 피고 돌아보면 펼쳐지는 멋진 풍경을 감상하면서 크게 늦지 않게 보고 내려올 수 있었다.
저 멀리 오늘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 송악산이 보인다. 해는 더 넘어가고 있었고 마음이 조금씩 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