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 국립공원의 하이라이트인 Torres del Paine 삼봉에 올라가는 날이다. 어제 잘 쉬기도 하고 또 가방도 찾아서 아침에 홀가분 할 줄 알았는데 그 동안의 피로가 꽤나 쌓였는지 침대 밖을 나가기 싫었다. 때마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것 같기도 해서 오늘 하루 더 쉬고 내일 올라갈까 잠시 마음먹었다가 같이 트레일하시는 분들이 하나 둘 출발하시기에 우리도 길을 나섰다. 기껏해야 찾은 가방은 대피소에 두고 그 동안 들고 다니던 배낭만 지고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을 걷기 시작했다. 때마침 Las Torres Hotel에서 한 무리의 관광객분들이 하이킹을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계셨는데 그 속에서 우리가 이 곳까지 오기로 결심하게 만든 아내의 동료분도 만나 간단히 환담을 나누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게 참 쉽지 않은 일인데 난 처음 뵙는 분이지만 괜히 반가웠다. 그리고 이 분들은 첫날인 이 분들이 앞으로 겪게 될 험난한 하이킹을 생각하니 괜히 숙연해졌다. 이 분들과 헤어져 앞만 보고 걷다 돌아보니 어느 새 제법 올라왔다. 이 때 돌아본 모습도 참 인상깊었다. Frances valley도 좋고 Torres 삼봉도 멋지지만 굳이 이름 붙여지지 않은, 하지만 걷는이의 발걸음을 잠시 늦추게 하는 이런 광경들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이런 오랜 하이킹의 묘미라면 묘미겠지.
어느 덧 완만한 오르막을 계속 올라 Valle Ascencio에 다다르면 저 깊은 곳에 중간 쉬는 곳인 Chileno 대피소가 보인다. 원래는 이 곳에서 하루 밤을 지내고 아침 일찍 올라가려고 했는데...... 그리고 Torres del Paine의 일출이, 즉 아침 햇살에 빨갛게 타오르는 Torres 삼봉의 모습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Chileno 대피소에서 해 뜨기 전에 출발하거나 아니면 한 시간 반 정도 더 올라간 Torres 캠핑장에서 새벽에 출발하곤한다. 하지만 올라가보니 난 못하겠더라. 이날도 마찬가지지만 일출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맑은 날씨를 만나기가 정말 쉽지 않고 해가 뜨지 않은체 이 험한 오르막을 오를 생각을 하니 괜히 몸서리가 처진다.
Chileno를 지나면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1시간 반 정도 지나 Campsite 이정표가 보이면 언듯언듯 삼봉이 잡힐 듯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도 상에서 짧은 거리라서 우습게 봤는데 왠걸 등고선을 거의 정확히 직각으로 가로지르는 등산로는 정말로 힘들었다. (사실 대부분의 여행기에서도 이 부분이 정말 힘들다고 하더라). 큰 바위들이 산사태가 난 것처럼 무너져 내려있고 그 위로 난 등산로는 무척이나 험했다. 정말 5 발짝 걷고 허리 한 번 펴고 또 5 발짝 걷고 허리 한 번 숙이고. 어느 덧 무념무상의 경지에 다다를 때 쯤 드디어 도착했다. Torres del P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