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다음 날 아침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 번 더 들어온 배를 살펴보고 역시나 조금 늦게 아침 9시 정도에 둘째 날 하이킹을 시작했다. 어젯밤에 다행이도 다음 숙소였던 Refugion Cuernos까지 오늘로 변경할 수 있어서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이미 절반이 떠나 버린 캠핑장. 우리가 이틀을 지낸 대피소도 역시 다음날을 준비하고 있었고 우리는 우리를 도와줬던 사람들에게 고마웠다고 한사람 한사람 찾아다니면서 인사를 했다. 그래도 떠날 때는 그 시크했던 호르헤도 우리의 행운을 빌어주었다. 또 중요한 점. 짐이 없으니 몸 조차도 더 가벼웠다. 다들 자기 키보다 높은 배낭을 매고 힘들게 걸어가는데 우리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가벼운 몸으로 조금 늦게 출발했지만 금새 앞지를 수 있었다. 이렇게 Camp Italiano까지 2시간을 걸었다.
짐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들은 저 푸른 호수에 던져버리고 Cuerno 봉을 향해 터벅 터벅 걸어갔다. 어제 이 길을 걸었으면 이 환상적으로 맑은 날씨를 즐길 수 없었으리라. 더불어 비바람에 걷기도 힘들었겠지. 등산을 하면서 인생을 배운다고 하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참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걸 새삼 느꼈다. 어제 왔던 비 때문인지 Curerno에 다가갈 수록 길이 질척해지긴 했으나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Curerno는 주봉과 동쪽 봉우리로 나눠져있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 수록 마치 왕관처럼 느껴졌다. 그 위로 햇살이 걸리니 마치 왕관 위에 보석이 박혀 빛나는 것 같았다.
Frances valley에서 빙하 녹은 물이 내려와 제법 큰 시내를 이루고 그 시내를 건너니 바로 중간 휴식지 Camp italiano다. 이 곳은 캠핑장 뿐이라서 특별한 시설은 없고 여기 저기 텐트들이 남아있었다. 우리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사람들은 이 곳에서 점심을 먹거나 아니면 무거운 배낭을 이 곳에 남겨두고 가볍게 Frances valley까지 올라가 주인 없는 배낭들이 여기저기 그득했다. 우리도 그나마 있던 가방 중 하나를 놓고 Frances valley로 올라갔다. 점심으로 Paine Grande에서 챙겨온 샌드위치도 정말 맛이 없었지만 한 입 베어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