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camp italiano에 던져놓고 Frances valley (Valle de Frances)에 오르기 시작했다. 목표는 계곡의 최종점인 Mirador Britanico이긴 했는데 생각보다 일정이 지체되기도 했고 같이 하이킹을 하는 몇몇 분들은 힘들 것 같다고 중간의 Mirador Frances에 돌아가기로 했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조금은 걱정이 되긴 했다. 하지만 다행이도 우리는 짐을 잃어버린 탓에 지금까지 가볍게 왔고 고로 체력이 많이 남아있어서 걱정했던 것 보다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맞이하는 풍경이 너무 멋져서 피로를 쉽게 잊을 수 있었다. 분명 눈앞에 펼져진 Cerro Paine Grande는 5분 전에도 10분 전에도 같은 봉우리 였는데 볼 때마다 다르고 또 훌륭한지. 봉우리 허리에 머물러 있던 빙하가 점점 다가왔고 또 점점 뒤로 갔고 어느새 숲이 펼쳐졌으며 그렇게 한 시간 정도 걸은 뒤 Mirador Frances에 도착했고 저 멀리 Lago Nordenskjold들 바라보며 숨을 좀 돌릴 수 있었다. 여기서 돌아가기로 하셨던 분들도 풍경이 너무 멋져서 별로 피로를 못 느꼈는지 아니면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느끼셨는지 끝까지 가기로 하셨다. 우리도 당연히 앞으로.
Mirador Frances를 지나니 바위나 돌들은 여전히 많았지만 오르막이었던 길은 좀 잦아들고 산 속 깊숙한 곳 빙하에서 녹은 듯한 들이 녹아서 흐르고 있었다. 이런 오랜 하이킹을 할 때 물을 많이 들고 다녀야해서 때로는 이 물이 배낭을 무겁게 하곤 하는데 이 곳에서는 그냥 저 빙하 녹은 물들을 마시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잠시 맛보았는데 그닥 별로 (그래서 나중에는 물 대신 와인을 넣고 다녔다). 길이 좀 평탄해져서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잡힐듯 잡힐듯 보일듯 보일듯한 Mirador Britanico는 잘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더 걷고 나서야 드디어 오른쪽에 Cuernos 봉우리들이 보였다. 각각의 봉우리들은 Espada (sword, 검), Hoja (leaf, 잎), Mascara (mask, 가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 날카로움이나 전체적인 모습을 생각해보면 금방 수긍이 되는 이름들이었다. 당당하게 Torres del Paine의 더위와 추위들을 맨몸으로 맞서 왔을 저 봉우리들을 바라보니 장엄함 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저 봉우리들을 뒤로하고 힘들게 서있는, 잎을 모두 잃은 나무들의 모습이 신비하게 느껴지졌다. 그렇게 Camp Britanico에 다다랐다.
하지만 Mirador Britanico까지는 30분 정도 더 (그리고 다시 오르막) 가야했다. 때마침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마주쳤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오리올즈 팬이라며 오리올즈 캡을 쓰고 있는 나를 응원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2시간 반이 걸려 Mirador Britanico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