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더욱더 짖궂어지고 바닥은 더욱더 질척였다. 정말 난 누구 여긴 어디 점점 아리송해졌지만 절대로 어두워 지지 않는 다는 확신이 있었고 손에 들고 있는 Lonely planet에 있는 지도를 과신(?)했던 턱에 씩씩하게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주변 경치를 즐기기에는 안개인지 구름인지 새까맣게 덮여 있어 보이는 것 없었다. 산행은 산행인데 정상을 오르지 못하는 (정상은 빙하에 덮여있어 접근이 불가) 산행이라 아무래도 성취감도 조금 덜 했던 것 같다. 어디가 정상인지도 사실 모르겠고. 하지만 바위에 빼꼼히 자리잡고 있는 야생화들이 밋밋한 산행에 소금 역할을 해주었다.
그래도 산정 부분에서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빙하를 손으로 만져보고 싶어서 잠시 등산로를 이탈하여 최대한 위로 올라갔다. 어찌보면 별 것 아닌 것인데 직접 만졌을 때의 그 짜릿함이란. 저 얼음 조각은 조금 때어네 오랫동안 보관하고 싶었다. 얼음 속에는 화산재가 섞여들어가 순백의 얼음 이미지와는 사뭇다른 모습이었지만 어느 것보다 귀중한 보석을 만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