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박사 학위 년차가 높아지다 보니 이것 저것 생각나는 일도 생각해야 하는 일도 많아져서 비나 확 와서 다 씻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왠걸 간만에 비가 장난아니게 온다. 왠 바람은 또 이리도 부는지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야할 비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내리는 것 같다. 덕분에 학교는 휴교인데 갑작스러운 이 휴가를 어찌하지 못하고 이냥 저냥 창밖만 바라보다가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미뤄왔던 일들을 조금이나마 처리했다. 내일 모레로 다가온 중간 고사 문제도 만들고 학생들 질문도 하나 하나 답해 주다 보니 어느 새 날은 저물어 더 이상 창밖으로 거친 비바람은 보이지 않고 대신 제멋대로인 바람 소리가 창문틈을 비집고 들어와 귓전에서 증폭되어 난 아직 죽지 않았다고 소리치고 있고 이에 화답하듯 멀리서 또는 가까이서 사이렌 소리가 뭔가 급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불편하게 알려준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밤에 제때 잠들기 어려워 슬쩍 걱정인지라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가 문득 떠오른 Riding on the storm. 불꺼놓고 바람소리를 믹싱하지 않은 효과음 그대로 배경음으로 깔아놓으니 정말로 내가 비오는 도로에 흠뻑 젖은채로 혼자 서서 터벅터벅 걸어가는 것 같다. 문득 차가 지나가면 심드렁하게 태워줘도 그만 안 태워저도 그만 심드렁하게 엄지를 올릴 수도 있겠지. 정말 모리슨은 약빨고 노래 부르는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쓰레기 장에서 우연히 주운 The Doors Best album은 지금 생각해보면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소년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저음으로 음울하게 웅얼데는 모리슨의 보컬과 베이스를 과감히 버리고 택한 만자렉의 몽환적인 키보드.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때는 그 감성을 느끼기에는 너무 어렸던 게지. 적어도 대학교 2학년 지옥의 묵시록에서 커츠 대령이 Fear....를 되뇌일 때 곧 세상이 끝날 것인 마냥 This is the end가 깔릴 때 3시간 동안 내심 지루하게 턱을 괴고 있다가 일순간에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 느낌. 뭔가 대단히 불편한데 다시 찾아 듣게 되서야 아 혹시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위의 클립은 도어즈에 관한 다큐멘터리 When you're strange의 일부. 한동안 너무나도 즐거운(?) 대학원 생활을 영위하느라 The Doors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고 하고 있다가 어느날 문득 영화에 대한 기사를 보고 서둘러 구해 보았다. 짐 모리슨과 닮은 배우가 로드트립을 하고 사이사이에 실제 The Doors의 영상을 끼워넣어 만든 그리고 조니 뎁의 나레이션이 더해진 영화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The Doors의 느낌을 되살려 주었다. 내가 음악을 좀 잘 알면 그 느낌을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며칠간은 잠자리에 들기전에 놓았다. 그 때 마다 꿈자리가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나 적어도 잠은 잘 들었던 터, 빗소리에 Riding on the storm을 섞어서 틀어놓고 오늘 밤에는 잠을 청해봐야겠다. Good 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