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are you going?/Chile (2015)

W trail (day 2) 7: Camp Italiano ~ Los Cuernos - Torres del Paine, Chile (2015. 12. 20)

bbackjin 2016. 9. 19. 21:03


다시 걷기 전에 잠시 발을 찬물에 담갔다. 사람들은 이미 Paine Grande로 또는 Los Cuernos로 떠났는지 주변에 물흐르는 소리가 가득했다. 문득 이렇게 주저 앉아 쉬고 싶기도 했다. 역시 W trail에서 가장 힘든 날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가방을 (비록 남들 보다는 훨씬 가벼운 가방이었지만) 다시 져야한다는 사실이 더더욱 힘들게 했다. 만약에 텐트를 들고 W trail을 한다면 Refugion Cuernos보다는 별로 좋지 않은 시설에도 불구하고 Camp Italiano에서 밤을 보냈을 것 같다. 그래도 툴툴 털고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눈 앞에 펼쳐졌던 봉우리들이 어느 새 다시 저만치 떨어져 다시 올려다 보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다. Cuernos 주봉들을 지나서 Cuernos 동봉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처음에는 평탄한 길만 이어지다가 점차 대피소에 가까워질 수록 길이 험해졌다. 지도상에서 상대적으로 짧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2시간 반이나 걸린다고 되어있었는데 거짓말이 아니었다. 큰 축적의 지도에는 차마 담기지 못한 많은 스위치백과 심한 높낮이 변화가 가득한 등산로였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들이 없어서 우리의 힘든 숨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고 서로간의 대화도 점점 잦아들어 왠지 모르게 스산하기까지 했다.



어느덧 산허리에서 내려와 호숫가에 다다랐고 하루 힘든 산행을 마친 등산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날의 하이킹이 막바지에 이르렀고 잠시 호수에 일렁이는 물결과 그 물결 같은 하늘의 구름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느 새 우리는 Cuernos 주봉들을 뒤로 하고 동봉을 머리 위에 두고 있었다. 저 동봉 밑에 폭포 소리가 가깝게 들릴 무렵. 우리는 Refugio los Cuernos에 다다랐다. 

  


우리 보다 먼저 출발한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고 또 우리 보다 나중에 출발한 사람들 환영했다. Trail을 하는 이 며칠 동안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동질감을 기본적으로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 때문인지 다른 사람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가방을 잃어버려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힘들게 하이킹을 한다는 우리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보니 다른 등반객들의 관심과 호기심 또는 동정심을 쉽게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길을 걸을 땐 참 힘들었는데 막상 대피소에 도착하니 잠이 쉽게 오지 않아 사람들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달도 보고 별도 봤다. 그리고 같이 여행한 사람들이 추천해서 잘 마시지도 못하는 팩 와인도 하나샀고 일정 내내 물병에 담아서 물 대신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