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are you going?/Chile (2015)

W trail (day 1) 3 - Torres del Paine, Chile (2015. 12. 19)

bbackjin 2016. 9. 11. 10:05


첫 날 일정인 Lago Grey 코스를 마친 소감은 솔직히 말하면 좋긴 좋았는데 이 것 때문에 이 오지까지 왔나라는 생각이 스멀스멀드는 정도였다. 그리고 Paine Grande에 돌아왔더니 구름이 걷히고 멋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Lago Pehoe 호수가에서 들어올 배를 기다렸다. 호숫가에 반쯤 잠겨있는 간이 정박대가 왠지 내 마음과 비슷한 것 같았다. 잔잔했던 호수 멀리서 드디어 이날 저녁 배가 보였고 흰 포말이 다가왔다. 하루 종일 기다렸던 배. 벌써 우리가 지켜본 5번째 배. 똑같이 앞으로의 모험에 잔뜩 들뜬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고 지쳤고 남루하지만 즐거운 표정의 사람들이 우르르 탔다. 그리고 이번에도 우리의 짐은......없었다. 사정을 아는 뱃사람들이 우리에게 같이 건너가자고 했고 그렇게 다시 배를 탔고 다시 건너편에서 버스들을 기다렸다. 어제의 재방송. 결과마저 재방송. 결국 우리의 짐은 이 곳에 도착하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실 12시에 우리의 짐은 호수 건너편에 도착했었는데 그 휴게소 주인이 뱃사람들에게 넘겨주지 않아서 오후 배를 타지 못하고 휴게소에 남겨졌다가 다시 Torres del Paine를 벗어나 이 번에는 우리가 처음으로 짐을 잃어버렸던 아르헨티나와 칠레 국경으로 돌아갔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결정했다. 까짓거 짐 없이 나머지 Trail을 하기로. 그래서 짐은 (서쪽의) Grande Paine가 아닌 (동쪽의) 이틀 후에 도착할 Refugio las Torres에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틀 동안 우리가 해결해야할 것들을 꼽아보니 일단 사진기 베터리 충전, 속옷, 양말 정도 였고 나름대로 해결 방법은 찾았다. 특히 우리 사정을 이 곳 저 곳 이야기하니 대피소에 있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도와 주겠다고 해서 생각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더불어 여행할 때 다른 사람들과 참 이야기 섞는게 힘들었었는데 이런 우리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니깐 서로 이야기를 시작하기가 쉬워서 다른 사람들과 여행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이날도 호르헤는 아주 시크하게 도와주었다.



짐 없이 나아가기로 결정하고 다시 Paine Grande로 돌아가는 길. 어제는 우중충했는데 마치 포기하면 편하다는 말처럼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도 정말 입이 다물어 지지 않을 정도로 멋있었다. 짐 잃어버린게 자랑도 아닌데 주변 사람들에게 "그거 알아요? 우리 짐 잃어버렸어요 하하하."라고 말하며 다른 때 보다 더 쉽게 사진찍어달라고 부탁도 하고 또 찍고 그랬다. 다시 봐도 이 때 찍은 사진들이 (어제랑 분명 같은 걸 찍은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훨씬 좋은 것 같다. 정말로 때로는 포기하면 편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