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영실 2 - 제주도, 한국 (2014, 10, 7)
꽤나 지리한 나무 계단이 끝나갈 때 쯤, 확연히 달라진 식생을 보면서 제법 높이 올라왔구나 느낄 수 있었다. 아마 1800m 지점 정도지나지 않았을까 싶다. 초가을 시원시원하게 마지막 푸르름을 뽑내던 나무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고산지대의 세찬 바람에 잎들을 잃어버린 낮은 관목들과 그 사이사이를 카페트 처럼 매꾸고 있는 더 낮은 관목 그리고 이끼들이 왠지 다른 세상에 다다른 것 같은 느낌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한라산을 넘어가지 못한 구름들이 걸려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걸음을 재촉하니 드디어 눈앞에 정상이 나타났다. 이 영실코스로는 정상을 향할 수 없지만 이렇게 존재감을 뽐내는 정상의 모습이 그래도 한 번 정상을 밟아볼 걸 그랬나 문득 아쉬운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곧 저 정상은 구름 뒤에 숨어 버렸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영실대피소 가는 길에 잠시 들른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산 정상인데도 꽤나 넓은 지대가 펼쳐져있었다. 일부는 푸르고 일부는 노란 모습이 마치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했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곳의 주인은 나라고 말하는 듯 까마귀가 늠름하게 앉아 있어서 몇장 사진에 담았다. 한 십분 정도 걸으니 우리의 목적지인 대피소에 도착했고 준비해온 점심을 먹었다. 이 곳 대피소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컵라면인데, 하필 서울과학고에서 수학여행온 학생들과 뒤섞인 바람에 줄을 너무 오래 서버렸네. 대신 16년 전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왔던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좀 묘했다. 그 때는 성판악으로 올라갔던 것 같은데 정상에서 낮잠을 잤던 기억이 난다.
아 그리고 점심으로 서귀포에서 다정이네 김밥에서 아침에 멸치김밥이랑 다정이네 김밥 이렇게 사서 올라갔는데 괜찮았다. 역시 산에서는 라면하고 김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