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을 뒤로하고 북부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 Akureyri로 이동하는 길. 한동안 도시와는 거리가 먼 곳들만 다녔는데 앞으로 만날 Akureyri는 제법 큰 도시라 괜히 설레는 기분이 있었다. 아 월드컵 한국-아르헨티나 경기가 있기도 했고 또 여기 독립기념일이 내일인지라 왠지 도시에서 특별한 행사가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다시 피요르드를 따라 놓여진 1번도로로 돌아오니 반갑기도 했다.
이 곳 저 곳 식생이 자리잡지 못한 곳은 맨살을 보이고 있다. 검붉은 지표면이 바람 때문인지 아주 오래전 쓸려내려간 퇴적물 때문인지 물결을 친다. 주변에 살포시 쌓인 모래들이 참 곱다. 절벽에서 점점 떨어져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갈 수록 시간 개념이 점차 흐려져 난 누구 여긴 어디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미 예상했던 시간은 훨씬 넘어갔고 지도 상에서의 나의 위치는 놓친지 오래다. 그리고 주변 풍경은 마치 과거 어느 시점에 내가 던져진 것 같았다.
초조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하다가 정반대 쪽 또다른 절벽에 다다랐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Jökulsa a Fjöllum 강.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마주침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잠시 잊고 경치감상 ㅋ. 저 멀리 Vatnajökull에서 출발한 시커먼 물줄기가 저 아래 흐르고 있었다. 결코 맑다고 할 수 수 없지만 오래 숙성되서 진해지는 와인처럼 세월이 녹은 잿빛 물줄기리라. 사진으로는 깊이가 느껴지지 않아서 아쉽네.
Jökulsargljufur national park에는 다양한 하이킹 코스가 있는데 우리는 Tofugja로 향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가지고 있는 지도가 생각보다 신통치않아서 그런지 예상했던 것 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걸렸다. 혹시 방문 계획이 있으면 꼭 좋은 지도를 가져가는 것이 좋을 듯. 절벽아래 너른 들판을 가로질러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 내려다보니 제법 아찔하다. 거친 푸른 비단을 깔아놓은 듯한 모습에 마치 다리미로 깊은 주름을 잡아 놓은 것 처럼 등산로가 외로이 이끌고 있었다.
저 멀리 우리가 밤을 보냈던 캠핑장이 보인다. 절벽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숨막힐 듯 했다. 절벽을 따라서 계속되는 등산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갔다. 어제는 저 밑에 나있는 도로로 차를 타고 들어갔었는데. 시선의 높이에 따라 같은 곳이지만 달라지는 풍경의 모습이 눈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날씨가 좀 더 좋았으면 더 좋았을 걸. 어제 갑자기 눈을 가로 막던 "섬", Ejyan 역시 새롭게 다가왔다. 문득 떡시루에서 막 떠낸 팥떡이 생각났다.
절벽을 내려다본 풍경은 아찔하지만 그 반대쪽은 마주하는 낭떠러지를 전혀 상상하지 못할 만큼 편평하다. 어두운 잿빛의 지형에 이끼와 같은 앉은뱅이 식생들이 이 곳 저 곳 자리잡아 지루함을 덜어준다. 오히려 흐린 날씨 탓인지 더더욱 평범하지 않는 풍광을 그려낸다고 할까? 하늘을 덮고 있는 구름의 모습과 땅을 덮고 있는 바위들의 모습이 뭉글뭉글하게 서로 비슷하다. 이 높은 지역에도 빗물이 괴어서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작은 물길도 볼 수 있었다. 바위 밑으로 흘러들어가는 물길이 왠지모를 궁금함을 불러일으켜 다가가고 싶게 만들었다. 여기에는 뭐가 살고 있을까? 이 물길은 어떻게 저 밑의 너른 강으로 흘러들어갈까?
Asbyrgi canyon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호수. 어제 차를 타고 갔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위에서 보니 심연에 지구 반대편으로 나올 수 있는 입구가 있을 것만 같다.
아이슬란드에서 2번째로 긴, Vatnajökull의 빙하에서 녹은 물들로 이루어진 Jökulsa a Fjöllum 강이 대륙판의 틈을 따라 조각한 Jðkulsargljufur national park. 거대한 바위판 사이로 펼쳐진 제법 넓은 평원이 기이하게 다가온다. 이 평원을 가르는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나올 것만 같다. (실제로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가 있다.) 이 국립공원은 남북으로 30km정도 펼쳐져 있는 공원인지라, 보통 2일을 꼬박 발로 종단하며 멋진 풍경을 감상하기를 추천하지만 우리는 자동차도 있고 시간도 허락하지 않아 북쪽 Asbyrgi로 접근하여 근처만 둘러보기로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인지라 얼른 밥을 해먹고 제법 익숙해진 잠자리도 마련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아이슬란드는 어디나 캠핑장이 잘 되어있어서 캠핑하기 좋았다. 어찌보면 호텔보다 가격대비 효과가 훨씬 좋은 듯.
Eyjan, 아이슬란드어로 "섬"이라는 뜻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양쪽에서 따라오던 절벽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눈 앞에 땋하고 나타나는 기분이 참으로 묘하다.
Jökulsargljufur national park으로 넘어가는 도중 Öxarfjörður 지역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아이슬란드 내륙에서 흘러나오는 빙하 녹은 물에 휩쓸려 온 검은 화산 퇴적물들이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넓은 삼각주를 이루고 있다. 물밑에 이런 퇴적층 덕분인지 마치 얇은 이불을 깔아놓은 것 처럼 북극해가 절벽 밑에 잔잔하게 찰랑 거린다.
저 너머로 북극이 있겠지.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런 생각의 정지를 깨뜨리는 것은 발 밑 절벽에 자리잡은 새들이었다.